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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환구단을 아시나요

by 루- 2022.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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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광장을 사이에 두고 덕수궁의 건너편에 위치한 환구단은 서울 한복판 중구 소공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웨스틴 조선호텔과 서울센터 빌딩, 재능교육 빌딩 등에 쌓여 사방이 막혀있는 형국입니다.


그럼 이곳은 어떤 곳이며 왜 이 자리에 이런 모습으로 남아있게 되었는지 같이 알아보시죠.

환구단(圜丘壇)은 천자(天子)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천단(祭天壇)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웠던 제천의식(祭天儀式)을 봉행하는 제단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나라의 제천의례(祭天儀禮)는 삼국시대 시작되었고 제도화된 환구제(圜丘祭)는, 고려 성종(재위 981∼997) 때부터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천자가 지내는 제천의례를 왜 조선이 하느냐는 중국의 간섭으로 조선 초기 세조 때 환구제가 폐지되었습니다.

그 후 조선을 대한제국이라 하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황제이니 천자로서 제천의식을 봉행하자고 하면서 당시 궁으로 사용되던 덕수궁 맞은편에 다시 설치되었습니다.

북경에 여행 가시면 들르는 곳 중 하나가 천단(天坛) 공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 중국의 환구단이 있습니다.

천단공원은 베이징 남쪽 동성구에 273만평방미터라는 어마 어마 한 넒이로 있습니다.


천단공원 기년전 祈年殿

천단공원 황궁우 내부

베이징 천단공원


그러면 우리는 왜 이리 작게 만들었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만들 때는 제법 크게 만들었습니다.


일제가 환구단의 대부분을 밀어 버리고 그 자리에 경성 철도 호텔을 세우면서 많은 시설이 사라지고
황궁우와 세 개의 돌북(석고) 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이때 제단이라고 할 수 있는 환구단마저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경성 철도호텔이 지금의 조선호텔입니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 건물이 황궁우라는 황천 상제(皇天上帝)와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 등 대한제국의 정통성을 뒷받침해줄
하늘과 땅, 그리고 조상신의 신위를 모시는 곳입니다



3층처럼 보이지만 안에는 천장까지 뚫려있는 구조입니다.

환구단 황궁우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울리는 북을 돌로 형상화한 돌북 석고

대한제국과 함께 탄생한 환구단은 완성 후 얼마 되지 않아 나라가 멸망의 길을 걷게 되면서, 다시 한번 그와 운명을 함께 했다.

대한제국이 병합된 다음 해인 1911년 2월에 환구단의 건물과 대지는 모두 조선총독부 소관으로 이전되었다.  

이후 조선총독부는 통치 5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1915년에 물산 공진회를 경복궁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하고, 1913년부터는 공진회 관람객들이 숙박할 수 있는 호텔을 환구단 일대에 신축하기 시작했다.  

철도 이용객과 외국인이 증가함에 따라 서양식 호텔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환구단이 대한제국의 상징물이었던 만큼, 일제가 이를 허물고 철도호텔을 세우기로 한 것도 정치적인 선택이었다.

철도호텔의 건설로 핵심 시설인 환구단은 철거되었고, 철거를 면한 부속 건축물들도 1914년 개관한 호텔의 부대시설로 활용되거나 다른 시설로 이전되는 등의 수모를 겪었다.

환구단의 정문은 그대로 호텔의 정문이 되었고, 제사를 위해 황제가 머물던 어재실은 아리랑하우스로 개명되어 호텔의 음식점 및 연회 장소로 활용되었다.  

1923년에는 석고단이 있던 영역에 총독부립경성도서관(조선총독부도서관)이 들어섰다.

이에 따라 1927년에 정문인 광선문을 남산에 있던 일본 사찰 동본원사(東本願寺)로 옮겨 그 정문으로 사용했고, 1935년에는 석고각 역시 장충단(奬忠壇) 앞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위해 건축한 박문사(博文寺)의 종루로 활용했다.  

훼철을 면한 석고단은 황궁우와 함께 현재까지도 남아 있지만, 원위치에서 벗어나 철도호텔의 후원으로 옮겨졌다. 대한제국의 상징인 환구단은 일제의 등장과 함께 철저히 분해된 것이다.

1945년 해방 이후에도 수난은 계속되었다. 1967년에 철도호텔 자리에 웨스틴조선호텔이 착공되면서 황궁우를 중심으로 한 환구단 일대가 사적 157호로 지정되었지만, 이후 각종 명목으로 문화재 지정 면적이 1,505평에서 1,310평으로, 다시 1,070평으로 축소되어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환구단 정문, 어재실 등 철도호텔에서 사용되던 부속 시설들이 훼손되거나 방매되었다.

국제관광공사의 『조선호텔 처리지(1967)』에 의하면, 정부는 팔각정, 석고단, 환구단 외의 호텔 건물 자체는 일본인이 시공한 건물로 문화재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방매된 시설들은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가, 2007년 서울 우이동 그린파크호텔의 재개발 과정에서 정문이 발견되었고, 음식점인 인수각도 변형되긴 했지만 환구단의 건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문은 우여곡절 끝에 42년 만인 2009년에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이전되었고, 2013년에는 일본식 조경으로 지적받던 잔디와 석등을 제거하는 등 복원 공사를 거쳐 일반에 재개방되었다.

한국사 데이터베이스(국사편찬위원회)



서울시청 광장 건너로 이전 설치된 환구단의 정문



밤의 황궁우는 자신을 집어삼킨 호텔룸의 아름다운 뷰가 되기 위해 잠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황궁우를 둘러싼 웨스틴 조선호텔

 

환구단 삼문

지금도 환구단은 위치상 조선호텔의 부속시설처럼 인식되고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환구단 뷰 룸을 비싸게 받는다든지 레스토랑 카페 라운지 등을 환구단 뷰로 배치해  특급호텔 중 전망이 가장 안 좋은 핸디캡을 환구단으로 메꾸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소중한 환구단을 계속 관리하는 호텔의 시선이 출입객들에게는 남의 집 들어가는 듯한 부담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일반 시민이 편하게 들어가서 편하게 관람할 수 있는 방법이 조금 더  모색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환구단은 현재 사적 157호로 일반에 공개된 문화재입니다. 그러니 서울시청 쪽에서  정문으로 들어가면 누구나 편하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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