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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일본에서 사기 당할 뻔 한 이야기

by 루- 2008.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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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회사의 주재원으로 일본에 7년 가까이 살면서 느낀 것이 있으니 그것은 "어느 나라나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배울 것도 많고 불편한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곳에 좋은 사람 많고 나쁜 사람도 역시 적지 않다는 것이죠. 일본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뒤섞여 살고 있다는 것이죠.

다만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더 편하게 살아 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처음 일본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집을 얻는 것인데 당시 3 LDK라고 하는 방 3개에 리빙룸과 키친이 있는 집을 월세(일본은 전세가 없습니다) 20만 엔에 구했습니다. 복덕방에서는 벽지 등을 새로 안 하는 대신 나갈 때 시키킹이라는 보증금을 다 돌려주겠다고 하더군요. 사실 회사의 비용이기 때문에 다 돌려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입주가 급해서 그냥 입주했습니다.

일본의 맨션을 보면 화장실과 샤워실이 분리되있습니다(요즘은 바뀐 곳도 많더군요). 당시 그 집은 샤워실 밖에 세탁기를 놓고 그 호스를 샤워실로 밀어 넣고 생활하게 돼있었는데요.... 문제는 처제가 놀러 왔을 때 발생했습니다. 한참 세탁 중인 호스를 밖으로 빼버리고 샤워실로 들어갔습니다. 당연히 호스 때문에 문이 닫히지 않았을 테니...... 세탁기의 물이 바닥으로 넘쳐 났고 다행히 빨리 발견하고는 조치를 취할 수 있었습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벨이 울리더군요. 나가보니 아래층 사는 사람이랍니다. 물이 샌다고....
가보니 정말 그 집 샤워실 밖 천장으로 물이 샜더군요... 그리고 천장 벽지는 예전에도  샌듯한 자국들이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사과를 하고 배상을 하겠다는 말을 하고 올라왔습니다. 그때는 몇 천 엔, 아니면 몇 만 엔 정도 들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다음 주 아랫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내려가 보니 장인이라는 분이 자기 집이라며 손해 배상액을 적은 종이를 주더군요. 내역을 보니 건물 안전 진단비 40만 엔, 자신이 이 일 알아보느라 일을 못한 비용 4만엔(일당이 약 만엔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새로 집 전체 도배하는데 15만에 정도 해서 전부 60만 엔 정도를 청구하더군요.

그때는 일본에 간지 얼마 안 되던 때라 상당히 당황되었습니다.
벌어진 입을 우선은 다물고 침착하게 "알았습니다"하고 올라왔죠.
다음 주에 연락이 오는 겁니다. 어떻게 되었냐고....
저는 "60만 엔도 좋지만 더 드려야 할지도 모르고 제가 일본을 잘 모르니 실례 없이 일을 마무리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다음 주 까지 기다려 달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일본인 친구나 동료들에게 물어보았더니 모두 '터무니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집에 있던 4천엔 짜리 양주를 들고 그 장인을 찾아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9,900엔을 주었죠. 놀라더군요.

"내가 일본에 와서 남에게 민폐를 끼쳤는데 100만 엔이 나올지 200만 엔이 나올지 모를 일에  당신의 아량으로 적당한 금액을 주고 마무리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일로 당신이 60만 엔을 내라는데 어찌하는 것이 좋을지 이 단지의 일본 분들에게 한집 한집 찾아다니며 물어보고 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주재원 신분이기 때문에 그냥 합의에 의한 지불보다는 재판을 통해 주는 것이 회계처리에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변호사가 "돈을 지불하지 않겠다고 하면 불리 해지니 일단 9,900엔을 지불하고 그쪽에서 민사소송을 걸게 해라 그러면 정확한 금액을 소송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라고 한다. 불편하시겠지만 민사소송을 걸어달라"라고 말했지요

이 양반 깜짝 놀라더니 지금 어디서 일하냐고 하더군요. 회사는 어디이고 지금은 협력 처인 D사에서 1년간 연수겸 일하고 있다고 했더니 "와~엘리트네... 자... 그건 뭐 이 걸로 만족한다".. 하면서 9900엔을 받고 갑자기 친절 모드로 돌입하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이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왜 이리 급변했는지 아시겠습니까?
아마도 제가 주변 동네 사람들에게 한 사람 한사람 묻고 다닌다는 것이 가장 무서웠을 겁니다. 일본인들은 동네에서 나쁜 소문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지요.
동네에서 "어머 저 집 누가 윗집에서 물을 흘렸는데 60만 엔을 달라 그랬다며... 쑥떡쑥떡.. 뭐 집 전체를 다 새로 도배해야 한다고 했다는데...."하고 다니면 정말 곤란하죠...^^

또 하나 제가 당시 연수받던 D사는일본 내에 영향력이 대단한 회사였습니다, 누구나 와~하는..... 그런 회사에서 연수를 받고 있다고 하고 그 회사의 변호사에게 물어봤다고 하니 더 이상 사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물론 다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회사 다니는 내가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다닐 수도 없고 변호사에게 까지 물어볼 이유도 없고...


이 집에서 한 4년 잘 살았습니다. 동네도 좋고 아이들도 잘 커가고, 그러다 좀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가기로 하고 집을 알아봤더니 집 바로 옆에 큰 공원이 있는 최신 맨션이 있더군요. 그래서 이사를 갔습니다.
살던 집의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하는데 보증금은 야칭(월세)의 2배로 보통 1개월치는 수리비로 떼고  1개월치를 돌려받는다더군요. 저는 수리 안된 집에 들어갔으니 2개월치가 다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살았던 아파트,일본에서는 단지라고 합니다. 맨숀보다는 저렴합니다
나중에 이사간 맨숀 일본은 대규모단지 보다 이런 독립된 나홀로 맨숀이 더 비싼경우가 많습니다

 

 
이사 가고 난 뒤 복덕방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자신들은 빠질 테니 전에 살던  집주인과 직접 보증금 돌려받는 것을 의논하라더군요. 조금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더니 팩스가 왔습니다. 내가 이사 간 뒤 집수리하는데 80만 엔 들었으니 시키킹 40만 엔과의 차액인 40만 엔을 지불하라고........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일부 못된 일본인들 중에 외국인들을 만만하게 보고 사기 치려는 인간들이 있다는 것을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일본 주재 5년 차의 저에게 사기를 치려하다니.. 주변에 물어보고 이번에는 진짜 회사의 계약 변호사와도 통화하고.. 결론은 "주택임대는 임대인의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수리를 하든 뭐를 하든 임대인의 비용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시키킹은 원래 임차료를 내지 못할 경우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다 돌려받는 것이 원칙이나 일본에서 관례상 1개월치만 돌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를 했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 한 할머니더군요. 영국에 거주하면서 임대료로 생활을 하는데 "자신 주변에 한국인 친구가 많아서 한국사람을 좋아한다"는 뻔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사실 돈이 더 들었는데 당신 생각해서 싸게 해 주었다. 당신 입주할 때 새로 싹 고쳐 주었는데 무슨 소리냐, 증거가 다 있다"(수리비 청구서)는 이야기였습니다.

더 이상 대화할 가치를 못 느끼겠더군요. 싸울 필요도 없고 그래서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나는 주재원 이기 때문에 반드시 시키킹은 받아야 된다.
차라리 재판에 의한 지불이라면 회계상 처리가 되니 당신을 상대로 재판을 걸겠다.
그리고 당신의 집은 동경주재 외국인 주재원 협회에 등록을 해서 불량 물건 처리가 되게 하겠다. 영국에 사는 당신이 재판 출석하려면 불편하겠지만 넓은 마음으로 양해해주기 바란다. 몇 월 며칠 몇 시까지 지정된 통장으로 돈을 입금하기를 바라며 그 시간 이후에는 입금을 하더라도 소송을 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 바란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전화가 오더군요 영국에서..........
40만 엔 추가 청구는 없던 걸로 할 테니 시키킹은 포기해 달라는.....
그래서 "포기하려 해도 회사 돈이니 재판을 통해 포기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저도 초조했습니다. 재판을 걸려면 보통 번거로운 것이 아니니 말이죠.......
그리고 동경주재 외국인 주재원 협회라는 것은 있지도 않은 것이고...........
물론 회사 비용으로 처리가 되는 부분이었지만 괘씸해서 그냥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시간 통장을 들고 은행에서 찍어 봤습니다.. 정확히 10분 전에 입금이 되었더군요.

우리나라에도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착취하고 무시하고 그런 사람들 있겠죠
일본에도 역시 외국인이니 도와줘야지 하는 사람과 얼렁뚱땅 사기 치려는 사람이 다 존재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지나간 추억이지만 그 당시 외국인으로 일본에서 살아야 했던 내게는 참 곤혹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일본 집값도 많이 내렸지만 임대료도 많이 내린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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