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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를 넘어 들러 본 신념과 신념의 충돌현장 "연풍성지"

by 루- 202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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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영남 사람들은 한양을 가기 위해 문경새재길을 넘었을 것이다. 그 길을 넘으면 나타나는 괴산 연풍. 괴산 사람들은 문경새재를 연풍새재라 부르고 있었다. 문경이든 연풍이든 충청도 괴산 사람들에게 새재는 그리 중요한 곳이 아니었으리라. 반대방향으로는 넓은 천지가 열려 있었고 한양도 반대방항인데 그 험한 곳을 많은 것을 걸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겠는가.

그리하여 문경새재에 있는 장원급제의 길이나 금의환향의 길이 연풍에서는 반대방향에 있는 길이다. 과거 보러 경북으로 넘어갈 리 없으니 당연한 것인데 타지인으로 양쪽을 보니 흥미로운 점이 있다.

하여 경상북도는 문경새재 공원을 만들어 새제 제1관부터 제2관, 제3관까지 이르는 길을 도립공원으로 지정하여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문경새재 제 1관문인 주흘문


문경새재를 넘나든 것은 한양을 향한 영남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숱한 왜란에서 왜군들이 한양을 향해가던 길도 이 새재길이었다. 그래서 왜란 이후 방비를 위해서 세워진 것이 지금 문경새재 도립공원의 상징과도 같은 1~3 관문들이다.

이 험한 길을 넘나들던 사람들이 또 있었으니 당시 핍박을 받던 천주교 신자들이었다. 전도를 위해서 또는 정부의 핍박을 피해서 비밀리에 산을 넘어 영남으로 넘어가고 결국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어 가던 길도 바로 문경새재, 연풍새재 길이었다.

하여 괴산군 연풍면에는 연풍성지가 있다.



연풍성지
延豊聖地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延豊面) 삼풍리에 있는 가톨릭 신자들의 순교지.

연풍성지

1791년(정조 15) 신해교난(辛亥敎難)으로 연풍지역에 은거하던 가톨릭 교인 추순옥(秋順玉)·이윤일(李尹一)·김병숙·김말당·김마루 등이 1801년(순조 1) 신유교난(辛酉敎難) 때 처형당한 자리이다.

괴산읍에서 연풍, 문경 방면으로 20km 정도 떨어져 있고, 문경새재 서쪽 기슭의 고지에 자리잡고 있다. 연풍면은 소백산맥의 산릉에 속한 험지여서 예로부터 경기, 서울을 중심으로 일어난 박해를 피해 은신처를 찾는 순교자들의 피난처로 이용되어 일찍이 신도촌이 형성되어 왔다.

1963년 천주교회가 연풍공소의 예배소로 사용하기 위해 조선시대의 향청 건물을 구입하였는데, 이곳은 전에 헌병주재소, 경찰지서 등으로 사용된 적도 있었다. 이곳에서 논과 집터 정리 작업을 하면서 박해 때 죄인들을 죽이는 도구로 사용된 형구돌 3개를 발견하였고, 1968년에는 한국천주교 103성인(聖人)에 속하는 황석두(黃錫斗:1811~1866)의 고향이 연풍으로 드러남에 따라 성지 개발이 본격화되었다. 황석두는 1813년(순조 13) 연풍면 병방(兵房)골에서 태어나 1866년(고종 3) 충청남도 보령군 오천면 갈매못성지에서 순교하였다.

1974년 천주교회에서 이곳을 성역화하였고, 1982년 평해 황씨 문중산에 묻힌 황석두의 유해를 이장해왔다. 성지 내에는 옛 연풍향청 건물과 높이 8.5m의 십자가상, 황석두의 입상과 묘가 있다. 십자가상 왼쪽에는 역시 갈매못성지에서 순교한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 등 5인의 성인상과 순교현양비(殉敎顯楊碑)가 서 있다. 문 앞에는 처형석(處刑石)을 전시하고 있으며, 최초의 한국인 주교인 노기남 대주교의 동상이 있다. 매년 2만여 명이 순례를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


(두산백과)
https://naver.me/G2U9HNaw




며칠을 계속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생전 처음 괴산 땅을 밟은 김에 연풍성지를 찾았다.


차분하게 매우 잘 정돈된 성지는 비 오는 평일이라 사람도 없이 한산했다.

처형장터
순교한 황석두 성인 입상


카페로 활용되는 시설이 있었으나 평일에는 운영하지 않고 있었다.



처형에 사용되었다는 돌 기구


죽음을 각오하고 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신념과 죽여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신념이 충돌한 비극적인 곳이지만


신도들에게는 신도로서의 의미를 갖고 돌아볼 수 있는 곳일 것이고 나처럼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비교적 차분하게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다.

신자가 아닌 입장에서 타인의 종교의 자유를 죽여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신념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죽여서라도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십자군을 동원해 셀 수없는 수의 사람들을 살육하고 , 신교와 구교 사이의 무지막지한 살육극들을 벌이고, 마녀사냥으로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만들어내던 것들이...

바로 죽어서라도 신념을 지키겠다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신념은 무서운 것. 강한 신념을 자랑하는 자들 그 책임의 무거움을 알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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